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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흑암이 깊음 위에 빛이 있음 - 창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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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1: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창1: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은 빛의 자체가 되시며, 빛의 역사를 하시는 능력의 신이시며, 능력을 통하여 창조의 열매로써 당신의 사랑의 본위를 나타내서 영광을 받으시기도 하시고 영광을 누리게 하시는 신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은 모든 활동하는 물체가 그 자체에 어떤 힘이나 빛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근본은 혼돈, 공허, 흑암에 있던 것인데 빛의 자체가 되시는 하나님의 빛의 역사가 물체에 부딪쳐 역사함으로써 물체는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받게 되고 모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생명을 받게 된 것이다.

  이제 혼돈, 공허, 흑암 위에 “빛이 있으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 세계 인류를 이루는 시발점의 하나가 된다고 보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빛이 있으라” 한 의의


  하나님은 빛의 자체이신데 영원부터 스스로 계신 신이시다. 그러나 영원부터 빛으로 홀로 계셔서 영원히 홀로 있다는 것은 빛의 가치를 발휘할 수 없고 아무런 효과 없는 빛이 될 것이로되 물체에 “빛이 있으라” 하는 그때부터 하나님은 기뻐하실 일이 시작되었다. 예를 든다면 아무리 부족함이 없는 인격이 있는 사람이라도 자기 홀로 있다는 것으로는 인격의 가치를 발휘할 수가 없다. 빛이 있으면 어두움을 찾아가야 할 것이고 힘이 있다면 약한 자를 찾아가야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 자체가 아무리 생명의 빛의 자체라 하더라도 생명 없는 물체에 들어와서 역사하는 일이 없다면 아무런 열매를 나타낼 수가 없을 것이므로 하나님은 영원한 빛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는 먼저 물체에서부터 역사해서 천지를 창조하므로 영원한 천국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흑암 위에 “빛이 있으라” 할 때부터가 천국 건설 운동에 개업을 하는 시발점의 선언이 되었다.

  지금 유물론자는 신의 존재를 부인하고 물체 자체가 점점 진화하는 변동의 힘이 있어서 이것으로써 이 세계가 이루어졌다고 본다는 것은 영적 흑암의 마귀의 미혹이라고 본다. 물체 자체의 힘이 천지 만물과 일월성신이 이렇게도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되 인간 생활에 필요한 것은 빠짐이 없이 있게 되었다고 본다면 이 이론은 허무맹랑한 이론이 된다. 왜냐하면 사람의 가치라는 것은 어디 있느냐 하는 것조차 모르는 이론이다.

  오늘이라도 내 몸에 생명의 빛이 떠나면 내 몸 자체가 즉시 혼돈, 공허, 흑암에 들어가고 말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육체의 몸을 흙에서 받았고 생명의 활동을 할 수 있는 영과 혼은 하나님 본체에서 왔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왜냐 할 때에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 있고, 또는 종교적인 신앙에서 창조주 신과 교통할 수 있는 생활을 체험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 할 때에 그 목적은 물체에서 사람을 창조하여 그 사람으로 창조주의 영광을 누리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했다고 보게 된다.



  2. “빛이 있으라” 한 기능


  하나님은 당신의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빛이 물체로 들어와야만 할 것은 이 물체라는 것은 하나님의 기능이 없이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무소불능의 역사가 물체를 찾아왔던 것이다.

  예를 든다면, 산속에 있는 광물이 사람을 찾아올 수 없고 사람이 광물을 찾아가 그것을 바로 사용할 때에 그 광물은 효과를 발휘하므로 사람의 생활에 필수품이 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빛의 활동이 흑암을 찾아오므로 물체에서 여호와의 능력의 말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본다. 물체가 움직여지는 그때부터 창조적인 활동이 물체에 들어오므로 아름다운 우주의 세계를 이루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빛의 자체인 동시에 그 빛이 먼저 물체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것도 없는 혼돈, 공허, 흑암의 세계만이 있었을 것이다. 기능적인 활동에 “빛이 있으라” 할 때부터 지금까지 끊어지지 않고 있음으로써 역사적인 조류가 흘러온 것이다. 그 기능은 영원히 우리 사람을 위하여 활동해줌으로써 세세 영광이라는 것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3. “빛이 있으라” 한 사랑


  사랑이라는 것은 완전한 삼위에게 있는 것이니 그 사랑은 “빛이 있으라” 할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아무리 무소불능의 생명의 빛이 되시는 신이시지만 당신의 가진 것을 주고 싶은 데서 말씀으로 움직이는 기능을 통하여 사랑의 자체가 되는 신의 소원을 이룬 것이 창조의 역사이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이 따라오게 된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주기를 좋아하는 것이 본질이니 완전한 신께서 그 완전한 것을 누구에게 주어야만 그 신의 마음은 기쁨이 되겠으므로 “빛이 있으라” 할 때부터 지금까지 어두움을 찾아오시면서 역사하는 사랑의 신이시다.



  결  론


  물체가 흑암에 잠겨있을 때에 “빛이 있으라” 한 것으로 창조의 일을 하여 물체가 열매를 맺게 하시었고, 피조물된 인생이 타락하므로 흑암에 떨어질 적에 생명의 빛이 되시는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서 빛이 있게 했고(요1:4~5), 또는 온 세계가 극도로 부패하여 흑암으로 들어가는 환난기에 빛의 말씀을 동방에 나타내어 그 말씀으로써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니(사60:1~3), 이와 같이 어두움이 깊음 위에 빛이 있게 하는 역사가 세 번 있음으로써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70년 11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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