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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기독교의 신앙이라는 것은 어떠한 생활에서 큰 발전을 볼 수가 있는지 여기에 대하여 말씀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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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기독교는 근본이 지극히 낮은 자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누운 어린 예수가 만왕의 왕이 된다는 것을 알 자는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와 별이 나타나서 증거하였습니다. 이러한 증거가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가신 길은 빈곤의 생활이요, 노동의 생활이요, 병자 방문의 길을 거쳐 죄인을 찾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죄인의 친구라는 이름을 듣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쓰라린 고통인 겟세마네 동산, 몸에 쓰라린 죽음의 고통인 십자가,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대상자 되는 그리스도의 생애입니다.

  그렇다면 그를 믿는 신앙의 생활도 다른 길은 아닐 것입니다. 신앙은 자아를 희생하는 것이 없이는 절대로 아무런 발전이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지만, 어떠한 생활에서 신앙은 발전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알 수 있습니다.

  1. 신앙은 마음에서부터 발전하여야 합니다.
  만일 어떤 신자가 마음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유형적인 무슨 사업의 발전을 흥미 있게 생각을 한다면 자동적으로 그 인격은 영적으로 움직이는 인격이 못 되고 한 사업적으로 움직이는 인격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마음의 소성과 성결과 참된 평화를 체험하는 데서부터 발전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행위가 부족하다고 하여도 심령 소성, 성결, 변화, 이것이 마음에 시작된다면 그 사람은 도덕을 초월한 인격에서 도덕적인 열매도 도덕을 중심한 인격보다 놀라운 인격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2. 작은 일에 실천이 있는 데서부터 큰일을 할 수 있는 인격으로 발전하는 것을 기독교 신앙의 인격 발전이라는 것입니다.
  산중에서 아버지의 양 떼를 지키기에 충성을 다하던 다윗이 만왕의 왕조가 되었고, 목수 생활에서 실천을 하던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되었다는 것이 기독 신앙자 생활의 모본이 되는 일입니다.
  만일 작은 일에 충성을 하지 않는 생활에서 큰 역사를 바라보는 신앙이라면 이것은 벌써 탈선된 신앙에 들어간 것이니, 이러한 자들은 아무런 발전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을 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자연을 창조하신 조물주로서 큰 것을 보시지 않고 작은 것을 보시고 기뻐하시기도 하시고 진노하시기도 하시는 것이니,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자에게 큰일을 하도록 역사를 나리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 역사라는 것입니다.

  3. 중심 속에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한다는 마음에서 자기의 어떤 위신이나 명예나 권력을 버리고 자기가 아무런 지경에 떨어지더라도 하나님만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 변치 않을 적에 그 사람은 모든 일에 큰 발전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사람을 통하여 영광을 받고자 하시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도 중심에 하나님만 영광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마음이 하나님과 의합되었으므로 하나님은 그 사람과 같이하시므로 초인간적인 발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4. 기독 신앙은 말씀을 중심하여 역사하는 진리의 신을 믿는 것이니, 말씀이 조금이라도 가감될 때에 그 신앙은 아무런 역사도 없는 신앙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신과 대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신앙은 성경을 다르게 해석하지를 말고 기록한 말씀 그대로 믿어서 그대로 역사하는 체험을 받게 되므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지렁이 같은 야곱이라도 새 타작기같이 강하게 역사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열심이 아니요, 진리를 따라서 순종하는 것이 신앙의 생활이 됩니다.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하여도 진리가 탈선될 때에 큰 과오가 되는 것이요, 열심이 적다 하여도 그 말씀에 합한 신앙이 될 때에 작은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를 이루는 것과 같은 발전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5. 신앙은 그 마음에 사랑의 불꽃이 있어야만 됩니다. 이것이 없다면 불이 꺼진 발동기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었지만 우리가 남을 살리고자 하여 불타는 마음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그 사랑은 열매가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울은 기독교의 대적이었지만 주님께서 사울에게 나타나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사랑으로 그를 중생시키므로 그는 그 사랑에 이끌려 동방과 서방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 목숨을 바쳤으므로 기독교는 세계에 대확장을 보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죽든지 살든지 그리스도만을 존귀케 한다고 하면서 불타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에 채운다고 결심을 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과거에 아무리 죄가 많다 하여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 마음에 불이 붙을 때에 많은 생명을 살려내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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