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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문답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기독교가 왜 이렇게 복잡해졌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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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기독교는 조금도 복잡성을 가질 필요조차 없는 종교입니다. 왜냐하면 이 종교는 사람이 어떤 신을 찾거나 어떤 진리를 연구하거나 하는 성질을 가진 것이 아니고, 신께서 사람을 찾고 신께서 사람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것이 기독교의 근본 원칙이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금일에 기독교가 복잡성을 띠게 된 것은 신앙의 대상자인 하나님의 불완전이 아니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신앙자들의 과오라고 보게 됩니다. 그 역사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탄생한 것이나 교훈한 것이나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나 부활, 승천, 성신강림으로써 완전한 교회가 예루살렘 다락방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교회라는 것은 사람이 어떤 목적을 위하여 시작한 것이 아니고, 부활 승천하시는 예수님께서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신의 권능을 받아가지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부활을 증거하라, 모든 죽은 영혼도 다 중생을 받아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도록 해서 민족적 국경적 차별이 없이 다 제자를 삼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승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던 제자들은 다시 예수님을 뵈올 수 없고 다락방에 들어와서 합심하여 기도를 하던 중에 오순절에 홀연히 강한 바람이 불어오며 큰 불이 혀같이 나타나서 제자들의 머리 위에 임하던 그때부터 큰 역사는 일어나서 어느 정권이나 병력이 당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반대하던 자라도 그 역사 앞에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진리 운동은 아시아를 비롯하여 유럽에 건너가 로마에까지 들어왔던 것입니다. 주후 66년경에 네로 황제라는 악한 임금이 거짓 흉계로 로마 도성에 14개 구나 되는 도성을 10구를 자기 손으로 불살라 놓고 기독교인이 이렇게 했다는 누명을 씌워가지고 기독교를 말살시키는 일을 할 때에 모든 사도는 다 세상을 떠나되 순교로 세상을 마친 것입니다. 그 후에 기독교는 200년이 가까운 세월을 지상에서 예배를 못보고 카타콤이라는 산속에 굴을 파고 거기서 신앙을 보존하며 성서를 보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콘스탄티노 황제 때에 기독교는 큰 해방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황제가 기독교인이 되어 황제 명령으로 교회를 움직이며 포교를 시키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카타콤에서 나온 성도들은 세상을 떠나고, 다음에 사람들이 성신의 역사보다도 권리를 쥐고 소위 카톨릭이란 이름하에서 교회가 사도적인 시대의 교회와는 달라지는 과정에 들어갔습니다. 이 원인은 카타콤의 성도들의 신앙을 본받지 않고 의식적으로 그들을 숭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숭배라는 것은 그들이 보던 성경이나 그들의 해골이나 또는 패물, 기타에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자기네는 정통이란 것을 자랑하기 위하여 무형적인 영계 운동보다도 유형적인 어떤 기념품, 사진, 동상 등의 숭배가 시작되어 성신의 법을 어기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변질될 때에 소위 교황이라는 교권이 나와서 신자들의 신앙을 구속시켜 성신의 활동을 못하게 하고 교황이 명령하는 것만을 순종해야 정통이라는 데서 교회는 진리가 암흑 세계로 들어가고 교인들은 성경을 듣지 못하고 교황이 기록해 보내는 글만을 가지게 되므로 신앙생활이 전부 의식화되고 봉건주의적인 교황 권리 아래서 예속화되는 자리에까지 들어가므로, 로마 교인은 이대로 있어서는 도저히 사도들이 전한 교훈의 광명을 세계에다 비출 수 없는 자리에 떨어졌으므로 하나님은 루터라는 사람을 들어서 쓸 때에 복음의 비밀을 성신의 계시로 알게 해서 교황의 모순된 점을 95조나 발견하여 반기를 들 때에 이것을 비롯하여 종교전쟁이 시작되어 많은 생명이 피해를 당한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승부는 완전히 이루지 못하고 구교와 신교라는 양 파가 생기어 세계적인 선교 활동을 동등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금일에 와서 소위 신교라는 파에서 많은 종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원인은 신앙 자유를 부르짖는 간판 밑에서 성신의 역사로 시작되었지만 그 자유가 세속으로 흐를 때에 오히려 교회는 복잡성을 띠는 폐단이 있으므로 그때그때에 영계의 인물들이 나타나서 부패한 교계를 다시 신령한 운동을 일으킬 때에 부패한 교권이 반대하는 폐단이 있으므로 장구한 시일이 흘러갈 때에 많은 교파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언제나 각 교파가 시작은 신령하게 한다고 했지만 교회가 확장될 때에 또다시 부패성을 띠게 되고 보니 신령한 사람은 소수요 부패한 자가 다수가 될 때에 민주주의 정책을 쓰는 신교는 자동적으로 분열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교황의 명령에서만 움직이는 교단이므로 아무리 의식화되고 세속화되었다 하더라도 분열을 가질 수 없는 교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금일에 와서 소위 신학자라는 인물이 신신학이니 세속화 신학이니 하는 것을 들고 나오는 현실에 신학계에 큰 복잡성을 띠게 되어 종된 자들이 자기가 들고 나온 신학을 중심하여 교파를 세우고 성경의 원리를 중심하지 않고 신학설을 중심할 때 성경은 오히려 어두워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기독교가 이렇게 복잡성을 띠는 이때에 소위 통합이니 합동이니 하는 간판을 들고 야단을 치지만, 이 시대는 어떠한 때냐 하는 것을 분명히 아는 성도들이라면 여기도 저기도 가입할 필요 없고 성경 본문으로 돌아가서 성경에서 시대를 바로 알고 성경에서 우리의 시대적인 사명이 무엇인 것을 바로 알아 현대에 닥쳐오는 난국을 어떻게 돌파한다는 것이 성서로써 분명히 알 것이니, 우리는 복잡한 신학계를 떠나서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지는 새 시대를 목적하고 계시록과 선지서를 맞추어서 다시 예언하는 일이 있어야만 될 것입니다(계1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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