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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것 같으나 받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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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주는 것 같으나 받는 일이 무엇인 것을 아는 것이 지혜로운 생활이라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입에 무엇이 잘 먹여지면 그것을 만족으로 아는 것이다. 이것은 잘 먹는 것 같으나 실지는 빼앗기는 일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 주는 것 같으나 받는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남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주는 일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해주고 앉은뱅이를 일으켜주고 죽은 자를 살려주고 굶주린 자에게 떡을 주고 최후에는 죽을 인생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까지 하시었다. 또 지금은 성령을 부어주신다. 이것이 전부 받는 일이다. 이것이 없다면 하나님은 아무것도 받을 것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주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것은 주심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때문이다.


  2) 주고 싶은 하나님의 종된 생활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직접 주시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통하여 주시고 주는 일의 종이 된 자에게 얼마든지 몇 갑절의 상급을 주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된 생활은 언제나 주는 생활이다. 만일 하나님의 종이 누구에게 주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고 사람의 종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종을 쓸 때 주고 싶은 사랑 속에서 쓰는 것이니 진리를 남에게 나눠주는 종은 언제나 진리를 공급하는 동시에 하늘의 왕권의 상급을 아울러 주는 것이다. 주의 종으로서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면 얼마든지 남에게 줄 것이 있게 된다. 이것을 충만한 종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거저 주고 거저 받는 생활이 가장 재미있는 생활이다.


  3) 하나님은 거저 주고 거저 받도록 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은혜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받은 은혜를 남에게 거저 주고 거저 받는 축복을 받게 될 때에 이것은 복된 생활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최고의 기쁨이나 만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4) 남에게 주는 종을 받들어 주는 생활이다.


  아무리 종을 받든다 하여도 남에게 주는 것이 없는 종을 받드는 것은 무효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선지자를 받들면 선지의 상을 받는다고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언제나 진리를 풍성히 하나님께 받아서 남을 살려주는 종을 받든다면 그 종이 하는 일을 받드는 종도 같이 하는 것같이 하나님은 취급한다. 그러므로 참된 종 하나를 만나는 것이 큰 축복이 된다는 것이다. 엘리야에게 떡 한 조각을 준 사렙다 과부의 가정에 하나님은 기름과 가루를 공급했던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주님께서 주고 받는 일과, 대표적인 종이 주고 받는 일과, 일반적인 성도가 주고 받는 일에 대하여 잘 분별할 때에 주는 것 같으나 받는 생활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그 하나를 체험할 때에 이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이상적인 사회를 이룰 수가 있다.

  소위 공산당들은 배고픈 자에게 빵을 준다는 미명하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대적한다는 것은 공산이 아니요, 공상당이라고 볼 수 있다. 공상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는 일을 공연히 생각을 하며, 하고 본즉 실패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 큰 실패는 공산당이라고 본다. 많은 사람이 실패했지만 씨가 없이 망하고 마는 실패는 공산당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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