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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라면서도 죽음의 길을 가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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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이 삶을 바라는 것은 하나같이 가지고 있는 욕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참으로 삶의 길이 무엇이며 죽음의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지식을 가진 자는 심히 적다고 본다. 그러므로 삶을 바라는 그 욕망을 채워보려고 날뛰는 것보다는 삶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아는 지식을 찾는 것이 먼저 할 일이다.

  아무리 유대인들이 유일신 종교의 사상을 가졌고 세계적인 종교 지도국의 사명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들의 열심이 참된 지식을 따르지 못하고 자기 욕망을 채워보려고 할 때에 오히려 불행을 가져오는 열심이 되었던 것이다(롬10:1~3).

  마귀란 놈은 사람을 꾀일 때에 산다는 말과, 완전해진다는 말을 가지고 꾀였던 것이다. 지금도 삶을 바라고 완전한 것을 바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마귀 미혹이라는 것은 죽을 일을 하게 하면서도 살게 되는 것처럼 생각이 나게 하고, 실패에 들어가는 일을 하게 하면서도 완전하게 되는 것처럼 생각이 나게 하는 것이다.

  이제 삶을 바라면서도 죽음의 길을 가는 생활은 무엇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자기 힘으로 삶의 길을 찾는 생활이다. (사9:8~12)


(사9:8)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

(사9:9)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알것이어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사9:10)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도다

(사9:1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그 원수들을 격동시키시리니

(사9:12)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그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찌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하나님께서 대자연을 창조하시고 인생을 낼 때에 인간의 힘으로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끔 하신 것이 아니다. 사람은 가장 무능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의지하므로 완전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가장 간교한 뱀을 창조하여 사람을 꾀어보았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순종하는 데 전력을 두는 사람으로서 완전한 것을 소유하도록금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는 것은 삶을 바라나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의 생활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생명의 능력의 역사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이 말씀해놓은 그 법을 순종하는 자에게만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2) 죽음을 두려워하고 삶의 길을 찾는 생활이다. (마16:25)


(마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종을 들어 쓸 때에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나가면 항상 같이하시고, 목숨을 아끼고 싸우지 않으면 함께하시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목숨을 아끼는 자는 오히려 죽게 되었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나가는 자는 죽는 길 같았으나 오히려 삶의 길을 가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종을 들어 쓰시는 목적은 왕국을 이루어서 세세 왕권의 영광을 주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나가는 자에게만 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살기를 원한다는 것은 사망의 법에 지배를 받고 있는 증거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워나간다는 것은 생명의 법에 지배를 받고 있는 증거이다. 왜냐하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 마음 자체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없는 증거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마음 자체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할 때에 사망의 법을 가진 마귀와는 하등에 관계가 없다. 사람에게 죽음의 공포가 있을 때에 이것은 생명의 활동이 그 마음에 없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죽고 사는 것이 자기의 힘에 있지 않고 어떤 원수의 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조물주 하나님께 있다. 만일 택한 자를 하나님께서 죽이지 않으려고 하시는데 원수들이 해치게 된다면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이 원수에게 지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수에게 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3) 남을 해치면서 삶의 길을 찾는 생활이다. (계13:10)


(계13:10)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오늘에 모든 인간들은 자기가 살아보려고 남을 해치는 것을 승리로 보고 심지어 사람을 많이 죽이고 자기 영토를 넓히는 사람을 영웅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자기가 살기 위하여 남을 해치는 것은 동물과 같은 생활이다. 자기가 살기 위하여 남을 해치는 사람은 자기가 죽게 되는 것이요, 남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같이하시므로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게 되는 것이다.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자기의 권리를 세우려던 나라는 다 망했지만, 만민을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는 자기가 살기 위하여 남을 해치는 사람을 전부 심판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인생 생활의 가치라는 것은 자기가 살기 위하여 남을 해치는 생활에 있지 않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생활에 있다. 그러나 이것을 체험한 자는 심히 적은 세상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가 세계를 정복하게 된 것은 남을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들어간 사람들이 하나같이 목숨을 바치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복음을 증거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한 세력이라도 남을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나가는 사람 앞에 굴복을 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 통일은 자기가 살기 위하여 남을 해치는 자에게 있지 않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자에게 있게 되므로 바벨론 세상이 불탈 때에 기뻐하게 된다(계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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