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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택한 양을 찾는 목자의 인격 - 요4: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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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는 택한 양을 찾아 한데 모으는 것을 목적하니만큼 목자의 인격이 온전하게 됨으로만 열매를 거두게 된다. 오늘에 기독교가 많은 목자가 있지만 목자의 인격을 상실하게 될 때에 교회는 아무런 발전을 보지 못하게 되는 일이 있게 된다.

  이방 종교는 택한 양을 찾는 종교가 아니요, 사람이 신을 찾아오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으므로 다신 숭배가 있다. 여러 가지 신을 섬기는 그것은 신이 사람을 찾는 종교가 아니고 사람이 신을 찾다 보니 여러 가지 신을 공경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 종교에는 목자의 인격이 완전치 못해도 종교를 유지해나가는 것은 사람이 무엇을 찾아보는 데 불과하기 때문에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덕을 보겠다는 욕망에서 이것저것을 찾아오는 정도로 나가는 것뿐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택한 양을 찾는 목자의 인격이 완전하므로 얼마든지 말할 수 있는 생명이 있는 것이다. 이제 생명 있는 교회에서 택한 양을 찾는 목자의 인격을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1. 겸손한 인격 (7~9)


(요4:7)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요4:8) 이는 제자들이 먹을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요4: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목자는 겸손한 인격이 없이는 택한 양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양과 목자의 인격 차이가 너무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목자가 양을 찾아가되, 양이 목자를 찾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을 찾아온다는 인격은 인간으로서 찾아볼 수 없는 겸손이다. 같은 야곱 자손이지만 유대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을 상종치 않은 것도 사마리아 사람은 야곱의 자손으로 속화되었다는 이유로 정통을 주장하는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에 대하여 상종하면 자기가 더러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겸손히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서 물을 구할 때에 사마리아 여인은 이상하게 보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겸손하게 사마리아 여인을 대하여 구하는 인격은 인간이 볼 때는 무가치한 일이나 하나님이 볼 때는 크게 기뻐한 일이다. 우리는 예수같이 겸손한 인격을 가지지 않고는 택한 양을 찾을 수 없다.



  2. 영생의 물을 주는 인격 (10~14)


(요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4:11)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요4: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요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5)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완전한 인격이라는 것은 받는 데 있지 않고 주는 데 있다. 죄인을 만나서 구하기 전에 먼저 내가 영생의 물을 준다고 하신 것은 주님밖에는 이런 일을 행할 자는 없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는 구원이 없다고 상종치 않는데, 예수님은 영생의 물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참된 목자의 인격은 목마른 양을 물을 줄 수 있는 인격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에 오신 목적이 영생의 물을 주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줄 수 있는 인격을 홀로 가질 수 없고, 주님이 쓰시는 종이 될 때에 주님께서 영생의 물을 주는 일을 하기 위하여 종을 들어 쓰시되 주님이 주시는 그 사랑에 이끌려 남을 살려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순종하는 자라면 그 종을 통하여 모든 심령들이 영생의 물을 먹게 하시므로 주님과 같이 영광을 즐길 수 있는 인격에 도달하게 한 것이다.

  언제나 목자는 영생의 물을 주는 역사가 있어야 한다. 계22:17을 보면 성령과 신부가 말하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하였다. 언제나 주님께서는 지금도 택한 양을 찾는 목자를 통하여 영생의 물이 되는 은혜의 역사를 강하게 나리고 계신다.



  3. 부족을 깨닫게 해주는 인격 (16~19)


(요4:16)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요4:17)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요4: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요4: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목자라는 사람은 부족한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니 양 떼가 완전하다면 목자가 필요 없고 너무 미약하고 어리석은 양이 되므로 목자가 필요하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택한 양된 무리에게 괴롭히는 말씀을 하지 않고 소망 있는 말씀을 하시며 택한 자의 부족을 깨닫게 하사 부드러운 말로 죄를 깨닫게 해주시는 예수님은 언제나 죄인을 향하여 그를 완전히 깨닫도록 해주시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것이다.

  의사는 언제나 병자를 바로 진찰하여서 그 병의 내막을 바로 알게 하여 그 병을 없이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참된 목자는 택한 양이 되는 사람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고 부족을 깨닫도록 해주시는 것이 목자의 인격이다. 우리는 언제나 모든 사람이 부족을 깨닫고 회개하게 하되 부드럽고도 사랑스러운 태도로 대하는 인격이 있어야 한다. 어떤 목자가 강단에서 부드럽고도 사랑스러운 태도로 택한 자의 부족을 깨닫게 해준다면 그 목자가 완전한 인격에 도달한 자라고 볼 수 있다.



  결  론


  기독교는 작은 자가 큰 자를 섬기는 종교가 아니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종교이며, 죄인이 의인을 섬기는 종교가 아니고 의인이 죄인을 섬기는 종교이며,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섬기는 종교가 아니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섬기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어느 단체보다도 목자의 인격이 완전해야 되는 것이다.



72년 9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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