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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믿음과 심판 - 요3:1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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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는 데는 믿음과 심판이라는 두 가지 법으로 완전히 말세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모든 역사나 말씀은 믿음과 심판으로 끝을 맺을 것을 목적하고 언약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독생자를 보내서 십자가에 죽게 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승천하신 것은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의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승천이 있기 전에는 완전한 신앙 운동이 일어나지를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신앙의 대상자의 완전 승리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신앙의 대상자가 되시는 주님의 역사는 믿음과 심판으로 결단을 나리는 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1. 구원을 받게 하려 보내신 예수를 믿음 (17)


(요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예수를 믿는 것은 구원을 받게 하려고 보내신 예수를 믿는 것이다. 우리가 완전하므로 된 것이 아니고, 믿게 하려는 불타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이다.

  구원을 받게 하려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일에 대하여 세 가지로 말하게 된다.


  첫째 : 하나님의 열심에서 되어지는 일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급한 일을 만날 때에 급한 일을 만난 사람의 열심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게 될 때에 그 사람을 사랑하는 자의 열심이 없이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때에 죽게 된 사람은 활동할 수 없고 죽게 된 자를 살려주려는 자의 희생적인 활동이 있어야만 하듯이, 죽게 된 인생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열심에서 되어지는 일이다.


  둘째 : 하나님의 책임에서 되어지는 일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죽어가는 사람을 만난 다음 그 사람을 돌보아 주어야 할 책임이 길 가던 사람에게 있는 것과 같이, 죽게 된 인생을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은 인생을 버려둔다는 것은 하나님이 큰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택한 인생을 구원을 받게 하려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억울하게 미혹을 받고 타락한 인생이기 때문이다.


  셋째 : 끝까지 참는 데서 되어지는 일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부모가 자식이 병들어서 애를 쓰는데 아무리 고생이 된다 하여도 그 아들을 끝까지 붙들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심지어 가산이 파괴되고 사업이 파괴된다 하여도 병든 아들을 살리고야 본다는 마음에서 부모는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자식을 구원하고자 할 것은 부모의 불타는 마음인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인생을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고 핍박을 받는 일이 있다 하여도 끝까지 참으시면서 기다리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구원하고자 하여 역사하는 일이 없다면 하나님을 훼방하고 핍박하는 자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훼방하고 핍박한다 하여도 끝까지 참으면서 기다리시는 것도 인간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데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2. 예수의 이름을 믿지 않으므로 받는 심판 (18)


(요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심판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풀되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심판을 받게 되는 데는 죄를 지었느냐, 죄를 짓지 않았느냐 하는 문제보다도 너는 이미 멸망받을 죄인인데 예수를 믿었느냐, 믿지 않았느냐 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이제 예수 이름을 믿지 않으므로 받는 심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알 것이다.


  첫째 : 하나님의 사랑을 반대했다는 죄는 완전히 멸망받을 죄가 된다. 조상 적부터 죄 아래서 출생하여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서 범죄했다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고 반대했다는 죄는 다시는 용서받을 길이 없는 죄다.

  둘째 : 예수를 반대했다는 죄는 심판권을 가진 자를 반대한 죄이므로 심판을 면할 수 없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자기를 살려주기 위하여 역사하는 사람을 원수로 알고 오히려 자기를 속이는 사람의 말을 따라간다는 이것은 망한다 하여도 누구든지 합당하게 볼 것이다. 왜냐하면 짐짓 죄를 범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천하에 전파한 이때에 그리스도의 사상을 대적하는 유물론 공산주의 사상을 따라간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심판의 대상자가 된다. 그러므로 오늘에 이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고 유물론 사상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멸망받을 바벨론을 이루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종말에 심판은 의로운 심판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계19:1~21). 만일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지 않고 심판한다면 의로운 심판이 될 수 없지만, 독생자를 보내서 복음을 전하고 믿지 않은 자를 심판하는 것은 가장 참되고도 의로운 심판이 되는 것이다.



  결  론


  가장 큰일은 예수를 믿는 일이다. 왜냐하면 심판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 하는 것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예수 믿는 일을 어리석게 본다는 것은 자기의 본심이 아니요, 마귀 흑암에 빠진 양심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해주려 보내신 예수를 반대한다는 것은 너무나 악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양심이라는 것은 다 선한 양심이 있는 것인데, 예수를 반대한다는 것은 흑암 덮인 양심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예수를 반대하는 자는 마귀의 도구가 된 인간들이므로 멸망을 받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72년 9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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