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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 요1:29~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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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락한 인생을 향하여 하나님이 할 일은 오직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의 진리 하나로만이 하나님은 해결할 수 있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를 진 자는 죄의 대가를, 의를 행하는 자는 의의 대가를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조물주 하나님의 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신이라는 것은 반드시 법을 따라서 역사하는 신이시니 하나님의 법에 따라 인간을 다스릴 책임이 있는 신을 조물주 하나님이란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참된 종교가 아니고 하나님이 사람을 찾는 것이 참된 구원의 종교가 된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을 찾을 때에 무조건 죄인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죄 된 인간을 아무런 의로운 방법이 없이 무조건 죄인을 불러들인다는 것도 불의가 될 것이고, 죄를 지은 사람을 무조건 죽인다는 것도 하나님의 의가 아니다. 그러므로 세상 죄를 아들에게 지워서 세상으로 보내는 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찾는 의로운 방법이다.

  이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의 진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할 것이다. 



  1. 완전한 공의이다 (29, 35~36, 사40:2)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1: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요1:36)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사40:2)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


  죄라는 것은 법을 범한 자에게 배상을 하는 것이 공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18:5~6을 보면 아무리 회개할 기회를 주어도 회개하지 않고 죄를 범하는 자에게 갑절이나 재앙으로 갚아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배나 갚아주어야 될 죄를 아들에게 짊어지워서 죄의 대가를 청산하는 것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완전한 속죄의 법이라는 것이다.

  첫째 아담의 범죄로 인간의 육의 사망이 왔고 그 후에 자범죄로 말미암아 영의 사망이 왔다(엡2:1).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올 때에 하나님의 신이 아무리 나타나서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가르쳤고 모든 선지를 통하여 심판의 경고를 주었다 하더라도 세상 죄를 지고 인간을 찾아오는 일이 없다면 그 공의로운 말씀은 한 지나간 이야기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공의로운 말씀은 세상 죄를 지고 세상에 오는 시간부터 인간에게 큰 효과를 발휘하는 열매가 되기 시작했다. 유대 땅 베들레헴 쓸쓸한 말구유에서부터 갈보리 산상 십자가까지 걸어가서 다 이루었다는 말씀으로 끝을 맺은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문을 열어놓은 것이다. 이 법이라는 것은 다시없는 유일한 법이다.



  2.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한 일 (30~34)


(요1: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요1: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1:32)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요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요1: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성령이 요단 강에서 어린 양 예수에게 임할 때에 몸이 물에 잠겨 올라올 때에 임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주님의 몸은 세상 죄를 짊어진 몸이요 성령으로 물과 피로 임한 몸이니 그 몸은 인간의 죄를 위하여 제물로 온 몸이니 물에 잠겨 올라온 것은 인간의 죄를 다 도말하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을 이루어놓는 뜻으로 친히 세례를 받으신 것이다. 

  그러면 성령이 임하는 것은 완전히 그 세례를 하나님께서 의롭게 인정한다는 증거다. 주님도 이것이 없다면 도저히 역사할 수가 없는 몸이다. 인간의 몸이란 것은 성령을 받음으로만이 완전하게 되는 몸이니 예수님도 성령을 받음으로써 완전 승리에 이르게 된 것이다. 기독교가 인간의 죄를 사하는 일이 있다 해도 성령이 임하는 일이 없다면 완전 승리를 이룰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신을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지음 받은 것이 인간의 몸이라는 것이다. 죄가 있는 몸에 성령이 임할 수 없다. 죄의 값은 사망이니 죄가 있는 몸이 성령의 전이 될 수가 없음으로써 우리 주님이 죄 없는 몸으로 만민의 죄를 짊어지고 오셨기 때문에 인간을 대표하여 세례를 받을 때부터 성령은 역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죄 사함 받은 자가 물에 잠겨 올라옴으로 해서 성령을 완전히 받게 된 것이다. 행2:38을 보면 “너희가 회개하고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베드로는 증거했던 것이다. 

  예수님께 임한 신의 역사는 은사가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 된 몸으로서 권세 역사를 받았던 것이다. 이것은 죄 사함 받은 예수가 아니고 남을 위하여 의를 행한 일이 되기 때문에 권세의 신을 받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말세에도 남종과 여종에게 신을 부어준다고 욜2:29에 말씀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죄 사함을 받을 때에 선물로 받는 성령은 은사로 받는 것이요, 의를 행함으로 받는 역사는 권세로 받는 것이다. 주님께서 만민의 죄를 짊어진 몸으로 와서 역사한 일은 아들 된 권세를 지상에서 나타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도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다고 하였다.



  3. 따라가는 자는 제자가 된다 (35~42)


(요1: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요1:36)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1: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요1: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요1:39)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시쯤 되었더라

(요1: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요1: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요1: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인간이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행위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믿었다는 의로 되는 것이다. 세례요한의 증거를 듣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는 사도가 되었고 모든 권리를 예수님께 받아서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미 생령된 이스라엘로 메시야 오기를 고대하고 있던 신앙 있는 자이므로 직접 사도로 택함을 받았다. 

  사람이라는 것은 자체가 의로운 사람은 없되 의로우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면 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를 행하시는 이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예수뿐이요 그 밖의 사람은 그 의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은 것뿐이다. 아무리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공경하였지만 그 의를 순종치 않을 적에 다 저주를 받게 된 것이다(롬10:1~4).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은 사람이 죄를 지으므로 심판을 한다는 것보다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의를 믿지 않을 때에 정죄를 받게 된다(요3:18).



  결  론


  하나님의 완전이라는 것은 세상 죄를 지고 인간을 찾아온 데서부터가 인간이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는 완전한 의가 성립되었으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이 완전이라는 것을 하나님도 가지고 인간도 받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남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라도 능력이 있다는 것으로써가 완전이 아니고 그 능력을 발휘하여 남을 살리는 일을 함으로만이 완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생자가 세상으로 오시므로 사람들은 참되다고 인을 칠 증거가 되었다(요3:31~33).



70년 9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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